관학과 사학, 고려시대 유학의 이해
관학과 사학을 통한 고려시대 유학 이해를 위한 글입니다. 고려시대는 유학이 국가 운영의 근본 이념으로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한 시기였습니다. 교육 체계는 관학과 사학으로 나뉘었고, 이를 통해 유학은 시대를 이끄는 기반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위한 토대가 됐습니다.
1. 관학과 사학, 교육의 두 축
고려시대의 관학(官學)은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한 교육기관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로 국자감과 향교가 있습니다.
- 국자감 : 수도 개경에 위치한 중앙 국립교육기관으로, 유학 교육뿐 아니라 기술 교육도 일부 담당했습니다. "국자감"이라는 이름은 ‘나라의 자식들을 살피는 교육기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향교 : 지방에 설립된 국립 교육기관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유학을 보급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고려의 관학과 대비되는 민간 교육기관으로 사학이 있었습니다. 사학은 사립학교로, 대표적인 예로 최충의 9재 학당이 있습니다. 최충은 학문의 권위를 인정받아 "해동공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그의 학당은 "문헌공도"라 불리며 학문적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사학의 인기가 관학을 압도하자 국가에서는 관학 진흥을 위해 여러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 7재 개설 : 국자감에 수준 높은 전문 강좌를 신설하여 학문의 심화를 도모했습니다.
- 양현고 운영 : 장학재단을 설치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함으로써 학업 장려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2. 성리학의 수용과 새로운 지향
고려 후기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유학은 새로운 철학적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성리학은 단순한 유교적 윤리를 넘어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학문으로, 안향에 의해 고려에 소개되었습니다.
- 성리학의 확산 과정에서 만권당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설립한 독서당인 만권당은 고려와 원의 유학자들이 교류하며 학문적 토론을 이어갔던 공간입니다.
이러한 성리학을 중심으로 신흥 지식인 계층인 신진사대부가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와 사회 체제를 구상하며, 고려 후기의 개혁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3. 새로운 시대를 여는 비전
비전은 단순한 지식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신라 말기 호족 세력은 선종과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세상을 꿈꿨고, 고려 말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습니다.
반면, 무신정권은 힘은 가졌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이 부족하여 결국 몰락했습니다. 이는 역사를 통해 배우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인생에서도 단순한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며, 큰 그림을 바라보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역사서에 담긴 정체성
고려시대는 다양한 역사서가 편찬된 시기로,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정체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1. 삼국사기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의 결정체
삼국사기는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 유교적 관점 :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서술 방식을 통해 신라 계승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 기전체 방식 : 역사를 본기(왕의 정치 기록), 열전(인물 전기), 지(제도와 문화), 연표 등으로 분류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중심의 사관을 통해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유교적 가치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 동명왕편 - 고구려의 강인한 기상을 담다
무신 집권기에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편찬되었습니다.
-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주몽)의 일대기를 서사시 형태로 기록한 작품으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드러냅니다.
- 당시 고려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고취하고, 국가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3.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
삼국유사(승려 일연)와 제왕운기(이승휴)는 원 간섭기 동안 편찬된 역사서로, 두 책 모두 단군 신화를 통해 우리 역사의 기원을 고조선으로 연결하며 민족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 삼국유사 : 불교적 색채를 중심으로 고대 설화와 야사를 엮어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게 기록했습니다.
- 제왕운기 : 한반도의 역사적 정통성을 고구려와 고조선까지 확장하며 몽골 지배 속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했습니다.
4. 역사의 힘 - 난국을 돌파하는 열쇠
고려 후기의 역사서들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찾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삼국사기의 합리주의 사관, 동명왕편의 민족적 자부심,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자주성은 모두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참고사항>
역대 왕조별 국립교육기관
왕조 | 교육기관 | 설립 시기 |
고구려 | 태학 | 소수림왕대 |
신라 | 국학 | 신문왕대 |
발해 | 주자감 | - |
고려 | 국자감, 향교 | - |
조선 | 성균관, 향교 | - |
마무리
관학과 사학, 고려시대의 유학과 역사서는 단순히 학문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비전과 정체성을 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힘을 얻는 것, 그것이 역사가 주는 지혜이자 교훈입니다.
이상과 같이 관학과 사학을 통한 고려시대 유학 이해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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