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양성평등의 시대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즉,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자비와 평등의 정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던 시기입니다. 이는 사회정책과 여성의 지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향도, 불교 신앙에서 상부상조의 공동체로
향도는 본래 불교 신앙 활동을 위한 조직이었으나, 점차 마을 공동체의 중심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향도의 활동
- 매향 활동 :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고 극락왕생과 국태민안을 기원
- 대규모 사원 건립 참여
- 불교 의례 진행
2. 후기 향도의 역할
- 마을의 상장례 주관
- 공동체 구성원 간 상호부조
- 마을 행사 진행
민생 안정을 위한 구휼 정책
고려 정부는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다양한 구휼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1. 흑창과 의창
- 태조가 설치한 흑창은 봄철 곡식을 대여해 주고 수확 후 상환받는 제도
- 성종 때 의창으로 개편되어 더욱 체계화
2. 제위보 운영
- 빈민 구제를 위한 재단 성격의 기구
- 기금의 이자로 구휼 사업 진행
- 위급 상황에 처한 백성 지원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와 권리
고려시대 여성들은 상당한 수준의 권리를 누렸으며, 이는 조선시대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혼인과 거주
- 일부일처제 정착
- 처가살이 문화 보편화
- 음서제도의 혜택이 사위와 외손자에게도 적용
2. 재산권과 상속
- 아들과 딸의 구분 없는 균분상속
- 호적에 출생순서대로 자녀 등재
- 딸의 재산권 보장
3. 제사와 봉양
- 딸도 부모 봉양과 제사 참여 가능
- 여성의 제사권 인정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원간섭기에 일부다처제 도입 시도가 있었을 때, 도성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이를 저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발언권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고려시대 여성 지위의 변화
고려시대의 상대적 양성평등은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적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점차 약화됩니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가부장제가 강화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현저히 하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사회정책과 여성의 지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한국사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 참고 - 고려시대의 상속사례
어머니가 일찍이 재산을 나누어 줄 때 나익희에게는 따로 노비 40구를 남겨 주었다. 나익회가 "제가 6남매 가운데 외아들이라 해서 어찌 사소한 것을 더 차지하여 여러 자녀들과 화목하게 살게 하려 한 어머니의 거룩한 뜻을 더럽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자. 어머니는 옳게 여기고 그 말을 따랐다-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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